광화문 태극기 집회, 그리고

기사승인 2019.10.03  17:3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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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3일 광화문 태극기 집회. 사진=인터넷언론인연대
[뉴스에듀신문=홍경석 대전.세종.충청 취재본부장] 광화문 집회

근대를 식민지로 맞이한 한국은 해방 후 정부수립을 했으나 남과 북이 분단된 채로 분단국이 되는 한계를 노정했다.

식민지를 겪은 나라와 민족에게 호소력이 있는 서구사상은 바로 기존의 모든 권력체제를 붕괴시킬 것을 추구하는 프롤레타리아(계급투쟁) 혁명을 추구하는 마르크시즘이다. 마르크시즘(공산사회주의)은 한국문화에서는 민중주의 - 민중문화의 형태로 자리잡고 있다.

좌파로 지칭되는 민족주의사회주의 세력들은 스스로를 ‘선(善)’과 ‘정의(正義)’로 규정하고 동일성의 독선에 빠져있다. 위선적 선비의 전통을 이은 민주화세력들과 좌파들은 사문난적(斯文亂賊)을 주장한 성리학자나 이단(異端)을 주장하는 기독교인들과 다를 바가 없는 사대적 관념론자들이었다.

이들 세력들은 국민의 삶을 망각한 채 외래사상인 민주주의(민중주의)의 이데올로기와 명분에 얽매인 채 아직도 산업화세력을 독재정권이라고 못 박고 있다.

이들은 또 집권을 하였을 때도 ‘문민정부’니 ‘국민의 정부’하면서 당파(黨派)를 부추기고,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훼손했다. 북한은 냉정하게 보면 나라도 아닌 ‘광적(狂的) 군사집단’에 불과하다.

그런 군사집단에 ‘핵 인질’로 잡혀 핵을 포기할 것을 종용(애원)하면서 계속해서 이런 저런 명목으로 북한에 달러를 바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이것이 바로 역사의 현실을 모르고 사대주의와 식민주의와 마르크스주의, 그리고 공리공론의 문치주의에 함몰된 사이비 선비의 역사관의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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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평화의 여정으로 본 한국문화]의 일부를 발췌한 글이다. 사회주의(socialism)에서는 사회 전체의 평등을 위하여 정치권력이 행사되어야 한다고 보는 사상을 지닌다.

사회주의에서는 인간이 사회공동체에 앞서 별개로 분리가능한 원자적 존재가 아니라 가족이나 마을, 국가 등 사회구성원의 일원으로서 존재양식을 가지는 사회적 존재라 보기 때문에 개개인보다는 사회를 위하여 권력이 행사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사회주의는 크게 두 갈래로 분류되는데, 자본주의 체제의 전복을 꾀하는 혁명적 사회주의와 북유럽의 사민주의 같이 시장과 공존하는 개혁적 사회주의가 그것이다. 이중 혁명적 사회주의를 ‘공산주의’라고 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을 비판하며 자본주의는 결국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에 의하여 자멸하고 계급 없이 평등한 공산주의 사회가 나타날 것이라 보았다.

‘공산주의’는 말 그대로 사유재산 없이 공동생산하고 공동분배하며,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하자는 경제체제인데, 따라서 그 성격상 자본주의와는 양립할 수 없다.

윈스턴 처칠은 공산주의의 단점을 한마디로 완벽하게 표현했다. “자본주의의 단점은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될 순 없다는 것이고, 공산주의의 단점은 모두가 거지가 되는 것이다.”

오늘 광화문에 간 지인들이 속속 인증샷을 보내오고 있다. 나는 피치 못해 못 갔지만 광화문에 모인 국민들은 이 시대 좌파들의 이중성을 똑똑히 보았을 것이다.

홍경석 대전.세종.충청 취재본부장 casj007@naver.com

<저작권자 © 뉴스에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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