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기자의 연작수필] (84) “윤미향, 저런 사람도 국회의원 하는데‥”

기사승인 2020.06.06  14:4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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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홍경석 기자
[뉴스에듀신문] 홍경석 대전.세종.충청 취재본부장 = “왕후장상에 무슨 씨가 있느냐?”는 명언이 있다. 이는 중국의 진(秦) 제국 당시에 만들어진 말이다. 이를 나름 사자성어로 줄이면 ‘왕장무씨’가 된다.

진나라는 진시황의 폭정(暴政)으로 민초들의 삶이 많이 힘들었다. 그 결과, 진승(陳勝)은 인간 해방의 목소리를 내걸고 거병(擧兵)하기에 이른다. 진승은 중국 진나라 말기의 농민 반란 지도자로서 기원전 209년 ‘진승·오광의 난’을 일으켜 장초(張楚)를 건국하였다.

그는 가난한 농부 출신으로 자기 땅이 없어서 남에게 고용되어 농사를 지었다. 그렇지만 젊어서부터 남달리 포부가 컸다. 어느 날 농장에서 일하다가 진승이 나중에 부귀(富貴)해지더라도 서로 잊지 말자고 하자, 주변 사람들은 그의 말을 모두 비웃었다.

그러자 진승은 “연작(燕雀, 제비와 참새)이 어찌 홍곡(鴻鵠, 기러기와 고니)의 뜻을 알겠느냐(燕雀安知 鴻鵠之志哉)”며 탄식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기원전 210년 진의 시황제(始皇帝, BC 259~BC 210)가 죽고 막내아들 호해(胡亥, BC 221 ~BC 207)가 2세황제(二世皇帝)로 즉위하였다.

그러나 간신 환관 조고(趙高)의 전횡(專橫)으로 백성들은 더욱 도탄(塗炭)에 빠졌다. 기원전 209년 7월, 2세 황제는 장성(長城) 건설 등 대규모 토목사업을 위해 과역(課役)이 면제되었던 빈민(貧民)까지 징발(徵發)하였다.

이때 진승도 징발되어 둔장(屯長)으로 900명의 일행과 함께 어양(漁陽)으로 출발하였다. 하지만 일행이 기현(蘄縣)에 이르렀을 때 큰 비를 만나 정해진 기한 안에 도착할 수 없게 되었다.

당시 진은 법(法)으로 기한을 어기는 사람들을 참형(斬刑)에 처하도록 정해 놓고 있었다. 따라서 당시 진승은 오광(吳廣)과 함께 무리를 이끌고 반란을 일으켰다.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라는 비장한 각오를 지니면서.

이 때 진승은 “왕과 제후, 장수와 재상의 씨가 따로 있겠느냐(王侯將相寧有種乎)”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진승은 ‘대초(大楚)’의 장군(將軍)임을 자처하며 농민반란군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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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의 폭정에 대한 백성들의 불만이 쌓여 있었으므로 농민군의 세력은 매우 빨리 확대되었다. 진승은 과거 초(楚) 말기의 도읍이었던 진성(陳城)을 점령한 뒤 왕위에 올라 국호를 ‘장초(張楚)’라 하였다.

진승의 반란군이 위세를 떨치자, 각지에서 유방(劉邦), 전담(田儋), 항량(項梁), 항우(項羽) 등의 군웅(群雄)이 봉기(蜂起)하였다. 그러나 각지에 파견된 장수들이 과거 6국의 귀족 세력과 연합하여 독립하면서 농민군의 세력은 점차 약화되었다.

설상가상(雪上加霜) 6국의 귀족들도 덩달아 왕으로 자처했다. 이후 장한(章邯)은 사마흔과 동예의 지원을 받아 장초의 도읍인 진성을 공격했고, 진승은 패하여 성보(城父)로 물러났다. 이곳에서 진승은 마부(馬夫)인 장고(荘賈)에게 살해되었다.

그렇긴 하더라도 그가 남긴 “왕후장상에 무슨 씨가 있느냐?”는 말은 지금도 저잣거리의 무지렁이 마음까지 뒤흔드는 설렘의 충동이 아닐 수 없다. 다음 주에 내가 운영위원으로 있는 모 관청에서 주민정책참여단 운영회의가 있다는 문자가 담당 주무관으로부터 도착했다.

그날의 주제는 위원장과 부위원장 선출과 운영규정 의결이라고 했다. 순간 군침이 돌았다. 다른 건 몰라도 ‘이번엔 나도 위원장 한 번 해보자!’는 어떤 야심과 욕심이 싹튼 때문이었다.

그런데 달력을 보니 그날은 또 야근이었다. 당일 회의는 오후 4시부터 열린다고 했다. 따라서 그 시간이면 이미 야근에 돌입해야 할 시간이므로 불참이 당연했다. 그럼에도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다른 직원에게 대근(代勤)을 시키면 되니까.

= [변명 일관한 윤미향, 국회의원 자격이 없다] = 이는 5월 30일자 서울경제에 실린 사설이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면서도 의원직 사퇴 의사를 밝히지 않은 이유는 국회의원으로 취임한 뒤 불체포 특권 뒤에 숨으려는 ‘계산’이라는 논지였다.

이에 대한 왈가불가(曰可不可)는 아니지만 한 마디를 논하자면 명료하다. “저런 사람도 국회의원 하는데 내가 운영위원장 못할 게 뭐가 있나?!”라고.

더욱이 나는 누구처럼 후원금을 내라고 한 적도, 그 공금을 횡령한 혐의도, 딸을 미국에 유학을 보낸 적도, 집 다섯 채를 매매하는 동안 모두 현금으로만 산 적도, 부동산에 투기한 적도 전무하거늘. 결론은 섰다. 대근비를 주고서라도 다음 주 운영위원회에 참석하기로.

홍경석 대전.세종.충청 취재본부장 casj007@naver.com

<저작권자 © 뉴스에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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