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기자의 연작수필] (62) 어떤 탄탄대로 論

기사승인 2019.11.17  14:5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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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듀신문=홍경석 대전.세종.충청 취재본부장] 태어나서 엄마를 알아보기도 전에 엄마는 이 아들을 버렸다. 그리곤 집을 나갔다. 실의와 좌절의 늪에 함몰된 아버지는 허구한 날 술독에 빠져 살았다.

가장이 돈은 안 벌고 무위도식, 아니 무위도주(無爲徒酒)만 하니 가난의 거미줄은 동아줄처럼 더욱 견고해졌다. 초등(국민)학교 내내 1~2등을 질주했지만 중학교조차 갈 수 없었다. 그보다 시급한 건 돈을 버는 일이었다.

그래야 홀아버지와 굶어죽지 않을 수 있었기에 하는 수 없었다. 삭풍이 휘몰아치는 역전으로 나가 신문을 팔았다. 이어선 구두닦이와 여름엔 우산장사, 아이스케끼 장사를 병행했다.

나이가 더 들어선 공사장에 나가 막노동까지 했다. 모정이 사무치게 그리웠기에 첫사랑이었던 지금의 아내와 결혼했다. 작수성례(酌水成禮)에 이어 수저 두 벌과 비키니옷장, 석유풍로와 반 지하 월세로 시작했다.

이후 두 아이를 보았으나 여전히 가난했다. 남들은 다 보낸다는 학원 역시 화중지병(畵中之餠)이었다. 좌고우면 끝에 돈이 안 들어가는 나름의 사교육 방법을 찾았다. 시(구)립도서관이 그 해법이었다.

아버지가 책을 열심히 보니 아이들도 자연스레 따라 했다. 그 결과 딸에 이어 아들도 서울대를 졸업했다. 오늘자 모 신문을 보니 [서울 주요 11개 대학 정시 모지 지원 가능 예상 점수]가 소개됐다.

이중 가장 높은 점수를 요구하는 대학은 역시나, 또한 여전히 서울대였다.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말이 새삼 맞다 싶으면서 나도 모르게 빙그레 미소가 봄날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못 배운 놈’이라는 편견을 불식시키고자 그동안 10만 권 이상의 책을 읽었다. 그 결과, 두 권의 저서를 냈다. 빠르면 내년 1월에 세 번 째 저서를 출간한다. 이 모든 게 다독(多讀)의 결과임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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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업인 경비원 급여만으론 아내와 먹고살기에도 급급하다. 하여 오래 전부터 투잡의 일환으로 시민기자를 하고 있다. 얼마 전 취재를 나갔더니 기관장님께서 “아이고~ 대기자(大記者)님께서 오셨다”며 환대해 주셨다.

쑥스럽긴 했지만 칭찬이라서 솔직히 기분은 좋았다. 화불단행(禍不單行)이란 말이 있지만 행운 또한 거푸 오는 게 우리네 인생이다. 지난달에는 모 언론기관에서 주최한 행사에서 기자와 작가 부문 대상(大賞)을 받았다.

이 역시 많은 책을 읽은 보람이자 결과임은 물론이다. 조선시대 때 ‘독서광’으로 소문난 인물이 김득신(金得臣)이다. 그가 1만 번 이상 읽은 책은 36권에 달했으며, [사기열전] 중 ‘백이전’(伯夷傳)은 무려 11만 3,000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덕분에 그는 말년에 ‘당대 최고의 시인’으로 불렸다. 숙명여고 교무부장의 쌍둥이 딸 둘이 자기 아버지의 파렴치 행위로 말미암아 ‘퇴학’이라는 불명예까지 안았다.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잘렸으니’ 지금의 학력은 기껏 중졸인 셈이다.

반면 장관직을 그만 둔 모 인사의 딸은 여전히 굳건하다. 법의 잣대가 왜 사람에 따라 다른 건지 도무지 알 방도가 없다. 아무리 살아있는 권력이라곤 하더라도 이러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이 정부의 캐치프레이즈가 공정, 정의, 평등이라고 했지 않았던가! 하여간 포기(暴棄)는 죄악(罪惡)이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했다.

여기에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정신까지 추가된다면 그의 앞길은 그야말로 탄탄대로가 아닐까 싶다.

   
▲ ‘글 쓰는 경비원’ 홍경석(오른쪽)씨가 각종 매체에 연재한 연재물 ‘인생은 사자성어’를 묶어 ‘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를 펴냈다.

홍경석 대전.세종.충청 취재본부장 casj007@naver.com

<저작권자 © 뉴스에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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