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듀=미디어잡 윤이나 기자] 바쁘신 와중에도 기자가 된 계기부터 <멕시코 반군, 왜 투쟁하나>의 취재 과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질문에 대해 하나하나 진솔하게, 그리고 유쾌하게 이야기해 주신 이소정 기자님.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게 진행됐던 이소정 기자님과의 인터뷰,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윤> 간단하게 자기 소개 부탁 드립니다.
<이> 안녕하세요, 2003년 1월에 입사한 KBS 공채 29기 기자 이소정입니다. 처음에는 사회부에 있다가 지역 근무가 있어서 충주에 1년 있었고요. 국제부, 문화부, 다시 사회부(법조)를 거쳐 ‘아침 뉴스 타임’ 앵커를 1년 조금 넘게 했고, 다시 경제부에서 취재를 하다가 지난해 가을부터는 ‘미디어 비평’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엊그제 입사한 것 같은데 벌써 10년 차네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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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BS 이소정 기자 [사진=미디어잡 제공] | ||
<이> 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스페인어 과를 가고 싶진 않았어요. (웃음) 제가 외고에서 스페인어를 공부한 게 있기도 해서 그 쪽으로 전공을 하게 되었지만, 사실은 정치학과나 언론관련학과를 가고 싶었죠. 그래도 스페인어를 전공한 것을 결코 후회하지는 않는 것이, 점점 스페인어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회사 안에 스페인어 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희소성이 있더라고요. KBS가 언론사 가운데 연합뉴스 빼고 거의 유일하게 중남미 특파원을 두고 있기도 하고요. 그리고 제가 국제대학원에서 중남미 지역학을 전공했는데 갈수록 중남미에 대한 관심도 많아지고, 교류도 많아지면서 뉴스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잘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중에 연차가 쌓이면 중남미 특파원으로 갈 수도 있겠고요.
<윤> 그럼 전공과 전혀 상관이 없는 기자가 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이> PD나 기자 생각하시는 많은 분들이 처음에는 잘 모르고 ‘신방과를 나와야 하나?’ 이렇게 많이 생각하실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던 적이 있었는데, 요즘 보면 언론 쪽과 전혀 상관없는 작곡과, 기계공학과, 화학과 출신의 기자도 있어요. 회사에서도 다양한 전문 분야의 기자들이 있는 것을 선호하는 것 같아요.
저는 스페인어과를 간 다음에 기자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기 보다는, 어릴 때부터 막연하게 기자를 꿈꿔 온 케이스에요. 사람들이 ‘쟤는 말하는 것으로 먹고 살 거야’, ‘쟤는 기자를 할거야’ 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서 막연하게 ‘난 방송 기자를 해야 하나보다’ 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원하는 과를 못 가게 되어서 ‘나는 기자는 안 되려나 보구나’ 하고 좌절을 했었죠. 그래서 중남미 쪽으로 유학을 가거나, 계속 공부를 할까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대학교 4학년 되기 직전, 멕시코 연수에서 귀국하기 몇 일 전에 아버지께서 갑자기 ‘앞으로 무엇을 할거냐?’ 하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 물음에 제가 할 말이 없는 거에요. 그 때 아버지께서 ‘너 어렸을 때는 기자하고 싶다고 하지 않았냐?’ 라고 하시는데, 거기서 뒤통수를 탁 맞는 기분이 들었어요. ‘아, 그랬지. 그런 게 있었지. 내가 왜 포기하고 잊어버리고 있었지?’ 싶어서 부랴부랴 입국을 한 뒤 어떻게 시험을 봐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 거의 맨땅에서 헤딩을 시작한 거죠. 기자가 되려고 했던 건 어릴 때 꿈을 되찾은 것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굉장히 오랜 기간 시험을 준비하고 여러 차례 실패한 뒤 KBS에 들어왔어요.
<윤> 준비 과정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그 당시와 지금 채용 과정이 많이 바뀌었죠? 어떤 차이가 있나요?
<이> 예전에는 상식 시험이 있었어요. 요즘은 합숙 과정이 생긴 회사들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 저희도 예전에는 합숙이 없었는데 생겼고요. 제 생각을 조금 덧붙이자면, 비록 상식 시험이 없더라도 여러 분야의 책을 많이 읽고 상식이 풍부한 친구들이면 회사 입장에서도 좋고 입사 뒤에도 기자로 능력을 발휘하기 훨씬 좋다고 생각해요.
<윤> 오래 준비하셨다고 했는데, 어떻게 준비를 하셨어요?
<이> 일단, 첫 해에는 아무래도 준비가 덜 되었기 때문에 떨어졌어요. 그래서 우선 다른 회사에 들어갔어요. 회사를 다니면서 시험 공부를 하려고 했는데 일과 공부를 병행한다는 게 생각처럼 쉽지는 않더라고요. 그래서 1년 반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을 다니면서 준비했어요. 근데 그 해에도 떨어졌어요. 대학원 가서 남들은 원서 보고 논문 준비하고 할 때 저는 시사 상식 보고 논술 준비하고 스터디 하고 그랬죠. 과 친구들이 뭐하냐고 물어보면 공인중개사 준비한다고 둘러대기도 했죠. (웃음) 정말 본격적으로 준비한 건 대학원 때였어요. 저는 스터디를 굉장히 열심히 했어요.
<윤> 어떻게 스터디를 하셨나요?
<이>
1) 멤버 별로 분야를 나눠 상식 정리 후 문제 풀이
2) 일주일에 두 권씩 독서 후 토론
3) 일주일에 논술 1개, 작문 1개를 쓰고 비평 및 토론
4) 신체 리듬을 시험 시간에 맞게 체화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학원에 갔어요. 언론고시 학원에 가서 한 두 달 정도 공부하면서 무슨 과목을 준비할지 감을 잡았죠. 아카데미에도 가서 기자 관련 수업을 한 두 달 정도 들었어요. 거기서 만난 마음 맞는 친구들과 스터디를 꾸린 거에요.
스터디 내용을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먼저 각자 한 명씩 문화, 사회, 과학 등의 분야를 맡아서 관련된 상식을 정리해 주고 그것을 가지고 일주일에 한 번씩 시험을 봤어요. 그리고 일주일에 두 권씩 책을 선정해서 같이 읽기도 했어요. 만약 이번 주가 과학 상식 공부를 하는 주면 과학과 관련된, 너무 어렵지는 않지만 상식에는 도움이 되는 서적을 읽는 거죠. 독서를 한 다음에는 책 내용에 대해 글을 쓰고 토론을 했어요. 또, 일주일에 논술 1개, 작문 1개씩을 꼭 써서 미리 인터넷 카페에 올린 다음, 만나면 글에 대해 서로 신랄하게 비평하며 토론하는 연습을 했어요.
시험을 보름 정도 남겨놓고는 회사 시험 시간에 우리의 생체리듬까지 맞췄어요. 회사 시험이 여덟 시라고 하면 우리도 그 시간에 모여서 똑 같은 형태로 모의 시험을 보는 거죠. 몸과 머리를 시험에 맞게 훈련시키자는 생각이었어요. 그 때, 저희 스터디 멤버들이 나이도 많은 데다가 누구보다도 간절했던 상황이어서 다들 고3 때보다 더 열심히 한 것 같아요. 그 때 스터디 멤버들은 거의 다 기자가 돼서 한 몫씩 하고 있죠.
<윤> 상식 자료는 어떤 식으로 얻으셨나요?
<이> 신문에서 관련 분야에 대한 자료를 얻거나 시사 상식 책을 봤어요. 읽기 쉬운 전문서적을 보기도 했고요.
<윤> 면접에 대해 이야기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이> 저는 필기에 붙은 다음에 스터디 멤버끼리 모여서 면접 연습을 했어요. 1차 면접이 카메라가 돌아가면서 진행되니까 기사를 뽑아서 멤버들 앞에서 읽는 것을 연습을 했어요. 그런 다음 ‘이건 어떻게 했음 좋겠다’ 하고 서로 지적을 해 주는 거죠. 일단 기사를 잘 읽는 연습은 당연히 해야 할 것 같고요. 방송 기자를 꿈꾼다면 뉴스를 봤을 때 ‘목소리가 좋아’, ‘톤이 좋아’, ‘기사가 귀에 쏙쏙 들어와’ 하는 기자를 정해서 그 기자의 기사를 뽑아 본다든지, 그 분의 영상을 계속 보고 듣는다든지 하면서 따라 해보면 연습이 많이 될 거라 생각해요.
그리고 자기소개서에 자기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잘 써야 그와 관련된 질문이 들어와요. 정말 재미없고, 무취무색인 내용을 쓰면 뻔한 질문이 날아오죠. 뻔한 질문은 오히려 대답하기도 어렵고, 면접 심사 들어가신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런 질문을 했을 때 열에 아홉은 답이 똑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만일 학술적이거나 언론계 현안에 대한 뻔한 질문을 받더라도 달달 외운 걸 말하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논문을 보고, 교과서를 보고 숙지한 내용이 있으면 그걸 지금 방송이나 프로그램을 보고 내가 느꼈던 것에 접목을 시켜 내 이야기로 만들어 풀어야 심사위원들이 끄덕끄덕하며 수긍할 수 있는 거에요.
<윤> 생각나는 면접 에피소드 있으세요?
<이> 1차 면접은 자기 소개서를 보고 신상에 관한 공격적인 질문들이 많이 들어오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때 당황하거나, 욱하거나 하면 안 된다고 봐요. 공격이 들어왔을 때 얼마나 여유롭게 그것을 되받아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이에 대해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공격은 대부분 나의 약점을 꼬투리 잡아 들어옵니다. 그러니 그걸 오히려 나의 강점으로 살릴 수 있다고 설득할 수 있는 게 좋겠죠. 저는 나이가 많다 보니까 ‘이소정씨는 대학 졸업하고 지금까지 뭐했습니까?’ 하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밥값 하겠습니다. 나이 먹은 만큼 경험도 많고 보는 시야도 넓으니 그만큼 더 밥값을 하지 않겠어요?’ 하니까 웃어주시더라고요. 재치있고 자신있게, 단 겸손하게 답변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윤> 신문 기사와 영상 미디어로써 내용을 전달하는 방송 기사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이> 방송 기사는 신문 기사보다 쓰기 더 쉽다, 취재를 대충해도 된다 라고 생각하시는 경우가 있는데 큰 오해에요. 신문 기사와 방송 기사의 차이는, 예를 들자면 똑같은 사안을 봤을 때 그것을 산문으로 쓰는 것과 그것을 압축해서 시로 쓰는 것의 차이라고 봐요. 방송 기사는 중요한 정보를 모두 담고 정확하게 압축하되, 경제적인 문장과 감각적인 구성으로 시청자들에게 1분 20초 동안 인지 시켜야 합니다. 이를 위해 훨씬 더 많은 외곽 취재가 필요하기도 해요.
또, 신문처럼 모든 팩트를 서술할 수 없기 때문에 ‘아’ 다르고 ‘어’ 다른 부분을 명확히 하기 위해 많은 취재원에게 교차 확인을 하고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해야 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제가 신입 때는 단 세줄 짜리 단신 하나를 선배에게 OK를 받는데 하루 종일 걸리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윤> 방송 기자, 그리고 방송 기사만의 특징이 있을까요?
<이> 취재 사안과 관련된 사람을 직접 만나 설득한 다음에 정보를 얻고, 실제 육성이나 모습이 담긴 인터뷰를 따야 하니까 인간관계에 많이 신경 써야 합니다. 어찌 보면 사람 장사를 잘하는 기자가 좋은 취재를 많이 한다고 할 수 있죠. 또, 카메라 기자와 오디오맨, 운전 기사까지 한 팀으로 움직이며 효과적으로 취재를 하려면 리더십, 기획력도 있어야 하죠.
방송 기자는 PD 마인드가 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영상 구성, 편집, 그래픽까지 모두 책임으로 져야 하거든요. 1분 20초짜리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고 해야 할까요. 내가 이 사안을 얼마나 시청자에게 효과적으로, 확실하게 전달할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해요.
제가 MBC 실무면접에서 ‘신문의 토막 기사(고물장수 아저씨에 관한 미담 기사)를 방송 기사로 만들어라’ 라는 문제를 받았어요. 기사 작성 뒤 세 명 정도가 같이 심사 위원들 앞에서 자신이 작성한 것을 직접 읽었죠.
제 기사의 시작은 ‘ <이펙트 1> “고물 사세요~!!” ‘ 였습니다. 다른 응시자들의 기사는 문제로 받은 신문 기사를 좀 각색해서 길이를 늘린 형태였다면, 제 기사에는 서술문의 거의 없었어요. “김 씨 왔어? 오늘은 많이 모았어?”, “제가 많이 가져서 돕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만큼 도와드리는거죠…하하하!” 이런 식으로 이펙트, 주변인과 주인공의 대화, 인터뷰 위주였죠. 그걸 마치 연극을 하듯이 읽었는데 심사위원들이 큰 호감을 보여주시더라고요. 방송에서는, 그리고 이런 미담기사에서는 현장감을 살리는 기사가 서술문보다 큰 반향을 준다는 데 동감하신 겁니다. 이렇듯 방송기사는 현장음, 이펙트, 인터뷰를 얼마나 적절하게 잘 살리느냐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윤> KBS만의 특징이나 조직 분위기가 있나요?
<이> 저희는 스타를 만드는 분위기는 아니에요. 오히려 두루두루 기회를 주고, 다같이 으쌰으쌰하는 분위기인 거죠. 누구 한 사람이 도드라지는 것보다는, 유기적으로 협업하는 걸 더 중시하는 조직 문화가 있어요. 내가 튀어야지, 스타가 되어야지 하는 친구들과는 안 맞을 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저희는 ‘공영 방송’ 이라는 특징이 있어요. 그래서 어떤 사항을 가능한 객관적으로, 중립을 지킨다는 게 기본 입장이에요. 기본적으로 교육을 받을 때 감정적인 형용사와 부사를 지양하고 드라이하게 기사를 쓰도록 해요. 그래서 리포트, 뉴스의 재미가 덜할 수도 있겠지만, 객관적 팩트에 충실하자는 게 KBS 보도국의 기본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윤> 방송 기자로써의 일과에 대해서 설명 부탁 드립니다.
<이> 출입처가 있는 부서는 일단 여섯 시 반, 일곱 시 정도까지 출입처로 가서 선배, 팀장에게 보고를 올려야 합니다. 그 날 내 출입처에서 무슨 일이 있을 것인지, 그 전날부터 지켜보던 사안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체크하고, 혹시 신문 기사에 출입처와 관련된 내용이 있다면 담당자에게 사실 여부 등을 확인하는 게 기본이죠. 그렇게 보고된 내용에 대해 부장들이 회의를 해서 아홉 시 뉴스에 올릴만한 게 있을지를 이야기 하시죠. 그 날 괜찮은 내용이 있으면 내 이름으로 올라가든, 선배 이름으로 올라가든 아홉 시 리포트를 준비해요. 선배 이름으로 올라가는 경우엔 선배 리포트를 도와주는 경우인 거죠. 만약 리포트 지정을 받지 않더라도 계속 기삿거리를 찾아 다녀야 합니다.
경제부 땐 제가 업계를 담당했기 때문에 모든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제 소관이었어요. 그래서 대기업 담당자들을 수시로 만난다든지, 대기업 노조나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인이 제보한 게 있다면 만나서 직접 이야기를 들어본다든지, 앞으로 예정된 업계 현안과 관련해 기획할 거리가 없는지 등을 찾아보는 겁니다. 하루 종일 거의 사람을 만나고, 정보를 얻고, 그 사람을 내 사람으로 만드는 게 일과에요. 그리고 KBS는 TV 채널만 두 개고, 뉴스 프로그램이 많은 데다, 라디오 뉴스들까지 있기 때문에 틈틈이 라디오 단신 기사, TV•라디오 전화 연결 등을 준비해야 합니다. 제 출입처에 관한 기사면 제가 다 책임지는 거죠.
<윤> 방송 기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어요?
<이> 만약 아홉 시 뉴스 리포트를 맡았다고 하면 발에 땀나도록 뛰어서 취재를 한 다음, 오후 다섯 시, 여섯 시에는 부리나케 회사로 들어와서 기사를 쓰고, 데스크의 사인을 받고, 편집을 하고, 아홉 시 전에 테이프를 넘겨야 해요. 아홉 시 언저리엔 편집실과 뉴스 생방송을 하고 있는 스튜디오 사이에 올림픽 육상 백 미터를 방불케 하는 모습들이 펼쳐져요. 뉴스 큐시트에 맞춰 테이프를 넘기지 못하면 뉴스 전체가 어그러지게 되는 거니까 아홉 시 뉴스 전후에는 모두 초 긴장상태인 거죠. 테이프를 넘기고 나면 팀 사람들이 모여서 뉴스를 봅니다. 한 팀에 TV가 대여섯 대 정도가 있는데, 각 방송 사의 뉴스를 틀어 놓고 비슷한 내용이 있는지, 비슷한 내용이 있다면 타 사와 비교했을 때 우리가 부족한 게 무엇인지 등을 비교 분석 하죠. 그러다가 아홉 시 넘어 퇴근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열한 시 뉴스 리포트나 다음날 아침 리포트를 맡게 되면 그걸 또 준비해야 하죠. 밝을 때 퇴근하는 게 오히려 어색합니다.
<윤> 지금 맡고 계신 <미디어 비평>에서의 업무는 어떠세요?
<이> 데일리 프로가 아니고, 출입처가 있는 부서가 아니다 보니까 비교적 시간적 여유는 있어요. 다만, 같은 언론을 비평하고 관찰하는 프로그램인 만큼 일주일 내내 고민을 많이 하게 되죠. 보통 월•화•수는 아이템을 준비하고 목요일에는 편집과 기사 작성, 금요일에는 녹화와 종합 편집을 해요. 출입처가 있는 취재 부서와 특집 및 주간 프로 사이에는 업무 형태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2~3년에 한 번씩 로테이션을 해요. 취재 부서는 너무 오래 있으면 체력적으로 많이 지칠 수 있고, 시사 제작 프로그램에서 호흡이 긴 취재물을 만들고 기사를 써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기 때문이죠.
<윤> 현업에 계시면서 느끼는 기자로써의 자질은 무엇이 있을까요? 만일 기자님께서 채용에 관여하신다면 지원자들의 어떤 부분을 많이 보실 것 같으세요?
<이> 말을 잘하는 사람보다 잘 듣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내가 뭔가 돋보여서 스타가 되고 싶은 친구들이 있을 것 같은데요. 방송 기자가 되고 싶다면 남의 말을 잘 듣고, 협업해서 사회에 임팩트를 주는 뉴스를 만들고자 하는 열정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또, 저희는 하루하루가 촉박하고 일희일비할 일들이 많기 때문에 마음에 내공과 여유가 있어야 된다고 해야 할까요? 어떤 상황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옳다고 믿으면 밀어 부칠 배짱도 있고, 안 좋은 일 있어도 빨리 다시 일어날 줄 알아야 하는 거죠. 물론 체력은 기본입니다. 제 경우엔 합격 뒤 연수원에 들어가니까 기자들은 다 보약 먹고 있더라고요. (웃음) 여자라고 해서 체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은 안 했으면 좋겠어요. 오히려 악으로 깡으로 잘 버티는 친구도 많죠. 남자, 여자 관계없이 모두 자기 관리를 잘 해야 할 것 같아요.
<윤> 기자를 하시면서 힘드신 부분은 없으셨어요?
<이> 앞서 이야기했듯이 아무래도 체력적인 부분이 가끔 힘들고요. 그리고 친구나 가족, 애인에게 소홀해질 수 있는 부분이 있어요. 힘들다기 보다는 많이 미안한 부분이죠. 내 것, 내 시간을 많이 희생해야 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대부분의 기자들은 사명감이 있고, 내가 노력해서 이 사회에 작은 변화를 일으켰을 때의 보람을 알기 때문에 이 일을 사랑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멕시코 농민반군 사파티스타의 근거지에 들어가 ‘제 2의 체 게바라’로 알려진 마르코스를 국내 최초 인터뷰하신 <멕시코 반군, 왜 투쟁하나>로 올해의 여기자상을 수상하셨어요. 취재 동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제가 멕시코 연수 때 지역 곳곳으로 배낭 여행을 다녔는데, 남부 쪽에서 유달리 군인들이 시간마다 검문을 하고, 외국인들의 여권을 꺼내 보고 하더라고요. 외국인 접근 금지 지역도 있었고요. 궁금해 하던 차에 하숙집, 학교 등에서 알아보니까 정부군과 농민 반군 사이에 교전이 있었고, 여전히 불안한 상황인 듯 하더군요. 그러던 중, 제가 다니던 학교에 프랑스 아저씨 한 분이 추방이 됐어요. 알고 보니 그 분이 농민반군을 지원하는 시민단체 일원이었는데 멕시코 정부에 발각됐던 거죠. 그 아저씨가 가지고 있던 자료를 제가 받았는데 그걸 보니 무엇이 문제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 점점 알고 싶어지더라고요. 궁금하긴 했지만 그 당시에는 학생이었으니까 뭘 더 해 볼 수는 없는 상황이었죠. 그렇게 사파티스타는 늘 제 마음 속에 빚처럼 남아있던 내용이었어요. 어떻게든 이것을 알아내고, 알리고 싶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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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미디어잡 제공] | ||
<이> 그렇게 사파티스타와 관련된 마음의 부채를 늘 지니고 있었는데, 국제부 근무 때 마침 ‘특파원 현장 보고’라는 프로그램이 새로 런칭을 했어요. 저한테 외국에 나가서 10분~15분짜리 리포트를 만들어 오라고 하기에 옳다구나, 사파티스타에 대한 아이템을 냈죠. 반군의 봉기 이유를 취재하고, 반군을 찾아가는 과정만 담아도 기사가 되지 않을까 해서 무작정 떠났습니다.
결론적으로 굉장히 운이 좋았어요. 일단은 제가 스페인어를 조금이라도 할 줄 아니까 취재와 인터뷰 등이 유연하다는 장점이 있었고, 밀림에 들어가기 전 다양한 시민 단체 사람들을 만났는데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밀림 안에 사파티스타 반군들의 마을이 수십 개가 숨겨져 있는데 그 중에 한 곳에서 조만간 회합이 있다는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었죠. 그래서 차량을 렌트하러 갔더니 그 사장님이 마침 군사 문제 관련 시민 단체 일원이어서 정부군의 초소가 어디 있는지를 꿰고 있더라고요. 당시는 멕시코 정부가 사파티스타에 대한 내용이 알려지지 않길 바라고 있었기 때문에 취재진이라는 걸 걸리게 되면 카메라 등을 다 뺏길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 사장님께서 직접 운전해 주신 덕분에 초소를 다 비껴가면서 그 마을을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 마을 사람들은 외지인들을 굉장히 경계를 했는데, 동양인이 스페인어로 인터뷰를 하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보여주니까 조금씩 마음을 열더라고요. 밀림에선 구할 수 없는 생필품, 아이들에게 줄 사탕들을 사가기도 했고요. 이렇게 미리 안면을 익혀놨기 때문에 회합 날에 마을 사람들이 제지를 많이 안 하더라고요. 사실 릴레이 회합이 시작한 뒤 며칠 동안은 인터뷰를 할 수가 없었어요. 마르코스를 중심으로 주변에 총을 든 사람들이 밧줄을 친 다음 에워싸면서 움직였기 때문에 거의 인터뷰를 포기하고 있었죠. 그러던 마지막 날에 마르코스가 족장의 집에 들어갔고, 그 사이 마르코스를 에워싸고 있던 사람들은 잠시 쉬고 있었습니다. 저는 ‘인터뷰는 못 하고 원거리 샷만 찍고 끝나겠구나’ 하고 있었고, 카메라 기자 선배도 비슷한 심정으로 멀찍이 나무 밑에서 서 계셨어요. 그렇게 한 시간쯤 뒤에 문이 딱 열렸는데, 이 때 지금도 카메라 기자 선배에게 고맙게 생각하고, 또 동료 간의 호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끼게 된 일이 일어났죠. 문이 열리는 순간 선배와 제가 동시에 눈빛을 교환한 다음, 사람들이 밧줄을 치기 전에 전력 질주를 해서 마르코스에게 달려간 거에요. 주변의 호위병들이 제지할 겨를도 없었죠. 계속 마이크를 대고 준비한 질문을 했는데도 처음엔 대답을 하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결정적으로 마르코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건 며칠 동안 마을 사람들과 지내면서 들었던 이야기 덕분입니다. 몇 달 전 멕시코 칸쿤에서 국제 회의가 열렸고,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시위가 있었는데 우리나라 농민 ‘이경해’씨가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던거죠. 그 이야기가 멕시코 농민들 사이에 퍼져서 사람들이 ‘꼬레아’를 알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나는 이경해 씨의 나라, 꼬레아에서 왔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듣고 싶다’ 라고 했더니 마르코스가 멈칫한 다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해줬어요. 그렇게 꿈 같은 인터뷰를 성공했고, 올해의 여기자 상을 받기도 했네요.
<윤> 마지막으로, 기자 지망생들, 즉 앞으로 후배가 될 분들에게 조언을 해 주신다면?
<이> 제가 감히 어떻게 조언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조금 부끄럽지만요. 시험 준비를 하시는 분들이라면 멀리 보고 해 나가셨음 좋겠어요. ‘내가 당장 이 시험에 붙어야지’ 보다는, ‘내가 어떤 기자가 되어야지’에 대해 고민해 봤으면 해요. 시험 점수 좋은 사람들은 많아요. 그런데 시험 점수가 좋다고 해서 좋은 기자가 되는 건 아니거든요. 내가 평생 어떤 기자로 살고 싶은지를 생각하고 그것에 대해서 내공을 많이 쌓았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분야와 기자상에 맞게 노력을 했으면 해요.
또 기자라는 직업은 바쁘고 힘들고 피곤하기 때문에,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호기심과 열정이 샘솟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정말 훌륭한 기자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SNS로 받은 질문들>
<윤> 기자님께 있어서 ‘미디어’란 무엇이고, 언론인으로써 미디어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시나요?
<이> 미디어 환경, 언론 환경은 급변하고 있고, 언론 역시 분명히 감시를 받아야 하는 권력 조직이기 때문에 ‘미디어 비평’은 반드시 필요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제가 이 프로를 맡게 되면서 공부를 굉장히 많이 하고 있어요. 모든 신문을 다 읽고, 모든 방송을 거의 다 보고 있는데 ‘언론이라고 할 만한 게 과연 몇 개나 있을까?’ 하는 질문을 계속 던지게 되더라고요. 지금 미디어 환경이 과도기인 것 같아요. 인터넷 언론, 1인 미디어, 대안 언론 등이 점점 늘어날수록 기존 언론의 설 자리가 줄어들 거라는 시각도 있지만, 저는 그럴수록 오히려 KBS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고 생각해요. 미디어는 ‘세상을 보는 창’인데, 그 창이 얼룩져있을 수도 있는 거고, 깨져있을 수도 있는 거고, 진짜 창이 아닐 수도 있는 거잖아요. 모든 것들을 무조건 믿을 수는 없는 거죠. 물론 공영 방송도 틀릴 때가 있지만, 적어도 무엇이 팩트가 아니고 무엇이 팩트인지는 구별할 수 있는 잣대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KBS 기자라면 더 전문적이어야 하고, 신중해야 하고, 훨씬 더 많은 공부를 해야 하는 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는 지금의 미디어계가 과도기를 지나서 좀 정리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제대로 된 ‘언론’ 역할을 하는 곳이 많아졌으면 싶어요.
<윤> 팩트에 왜곡이 있을 때, 기자에게는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나요?
<이> 거의 기자 자신, 본인의 책임이죠. 그러니까 한 줄을 쓰더라도 크로스 체킹이 필요하고, 여러 사람들에게 확인을 해야 하며, 이 사람의 목소리가 들어갔으면 그에 대한 반론도 넣어줘야 하는 거에요. 요즘에는 초상권이며, 명예훼손에 관한 소송이 많이 발생하더라고요. 소송이 무서워서 기사를 못 쓰는 경우는 없지만, 인권이나 사생활 같은 부분에 있어서는 주의가 필요하죠.
소송이나 언론중재 등이 들어오면 기본적으로 기자 본인의 책임이지만 회사 법무실에서 같이 대응합니다.
<윤> 왜곡이 일어나는 원인으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이> 정말 열심히 취재했는데 이 사람이 나를 속였다거나, 제보가 허위였다던가 하는 경우도 있겠고, 시간이 부족해서 크로스 체킹을 덜 한 경우가 있을 수도 있겠네요.
[미디어잡 취업기자단 6기] 유이나 기자 ihnayoon@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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